바이칼 호수의 ‘신기한 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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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의 ‘신기한 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07.2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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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탁자(Glacier Table). /사진=위키 미디어
빙하 탁자(Glacier Table). /사진=위키 미디어
드럼헬러 후두(Drumheller hoodoos). /사진=김범준
드럼헬러 후두(Drumheller hoodoos). /사진=김범준

신비로운 형상들이 자연에 많다. 빙하 지역에는 몇 미터 높이의 얼음 기둥위에 큰 바위가 턱 올라서 있는 빙하 탁자(glacier table)가 있다. 또, 캐나다 드럼헬러 지역에는 흐르는 빗물이 깎아 만든 신기한 모습의 기암인 후두(hoodoos)도 있다. 누군가가 기둥 위에 바위를 조심조심 중심 잡아 올려놓은 것이 아니다. 시간의 힘으로 자연이 스스로 빚어낸 멋진 모습들이다.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간혹 발견되는 ‘바이칼 젠(Baikal Zen)’이라 불리는 신기한 모습도 있다. 독자도 인터넷 검색으로 멋진 사진을 찾아 감상해보길. 얼어붙은 호수면 위, 좁은 얼음 기둥 위에 돌이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영어 Zen은 한자로 선(禪)이다. 바이칼 젠을 보면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깊은 명상에 잠긴 선승(禪僧)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비로운 바이칼 젠은 과연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바이칼 젠을 옆에서 본 모습.(그림1)
바이칼 젠을 옆에서 본 모습.(그림1)

오늘 소개할 논문(DOI:10.1073/pnas.2109107118)에서 두 물리학자 타벌렛(N. Taberlet)과 플리옹(N. Plihon)은 바이칼 젠의 형성에 어떤 물리적 과정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2021년 필자가 출연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바이칼 젠을 다루기도 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한 침식과 승화, 그리고 밤사이 서리가 아침 햇살에 녹아 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져 얼음을 녹이는 것, 이렇게 두 가설을 주변 물리학자와 함께 생각해본 기억이 있다. 바이칼 젠의 형성에 대한 가설이 과거에도 여럿 제안되었다고 한다. 이 중 가장 합리적인 형성원인을 처음 명확히 밝힌 것이 오늘 소개할 논문이다.

바이칼 젠을 만들어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물리적 과정은 어떤 것일까? 논문의 두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실험과 수치 계산을 함께 이용해 찾아간다. 만약 주변 공기의 흐름이 없어도 바이칼 젠이 만들어진다면 바람에 의한 침식과 승화는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돌 대신 열전도율이 상당히 큰 금속을 덮개로 이용하면 어떨까? 햇볕 등 외부의 복사열로 덮개의 온도가 조금 올라도 짧은 시간 안에 그 열이 아래로 전달되니 덮개와 얼음 기둥의 온도차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열전도율이 큰 금속 덮개를 이용해도 바이칼 젠이 만들어진다면 덮개와 얼음의 온도차가 형성 원인일 수 없다.

처음 바이칼 젠의 모습을 보았을 때 궁금한 것이 있었다. 만약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으로 얼음이 승화해 바이칼 젠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왜 돌 아래의 얼음기둥의 단면은 원모양이어서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봐도 똑같은 대칭적인 모습일까? 해가 뜬 남쪽 방향과 해가 없는 북쪽 방향의 얼음 기둥의 모습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바이칼 호수에서는, 직사광선의 형태로 직접 빙판에 내려 쬐어 햇빛이 전달하는 복사에너지 보다 겨울 하늘에 떠있는 구름에서 여기저기로 산란된 햇빛의 형태로 전달되는 복사에너지의 총량이 더 크다고 한다. 하늘 위 구름에서 산란한 빛은 온갖 방향에서 바이칼 젠에 입사한다. 돌 아래 얼음기둥의 단면이 원의 모습으로 대칭적일 수 있는 이유다.

논문 저자들은 먼저, 동결 건조기안에 평평한 얼음을 넣고 그 위에 열전도율이 큰 금속 원반을 올렸다. 동결 건조기 안 공기를 제거해 거의 진공상태로 만들고, 건조기 몸체의 온도는 실온으로 두어 그 안 얼음의 온도보다 높게 유지했다. 구름에서 산란해 얼음으로 입사하는 태양광은 실험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모든 물체는 온도에 따라 각각 다른 파장의 전자기파를 낸다. 바로 물리학의 흑체복사(blackbody radiation)다. 적외선 카메라로 체온을 재서 발열 검사를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결 건조기 몸체의 온도가 내부 얼음보다 더 높아서, 적외선 영역의 전자기파가 건조기의 안쪽 벽에서 얼음을 향해 여러 방향에서 입사해 복사에너지를 얼음에 전달한다. 현실 바이칼 호수의 구름에서 산란해 여러 방향에서 입사하는 복사에너지에 해당한다. 전달된 복사에너지는 얼음 표면에 있는 물 분자의 운동에너지를 크게 하고 이렇게 더 빨리 움직이게 된 물 분자는 얼음에서 벗어나 건조기 안 공간으로 뛰쳐나간다. 바로, 고체상태에서 중간의 액체상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기체상태로 변하는, 승화(sublimation) 과정이다.

이 실험 장치를 통해 구현된 상황을 정리해보자. 안에 공기가 없으니 바람의 효과를 제외할 수 있다. 또, 덮개돌로 열전도율이 높은 금속 원반을 이용했으니, 덮개와 얼음 사이의 열전달의 효과도 배제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 방향에서 쏟아지는 복사광이 일으키는 얼음의 승화과정의 효과만을 이 실험 장치로 살펴볼 수 있게 된다. 논문 저자들은 이 실험 장치를 이용해 바이칼 젠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을 멋지게 재현했다. <그림 2>처럼, 처음 얼음 위에 가만히 올려둔 금속 원반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고, 계속 되는 복사가 만들어내는 승화과정을 통해 얼음판 전체의 높이가 낮아진다. 하지만, 금속 원반 바로 아래의 얼음은 승화하지 않아서, 조금씩 길어지는 얼음기둥이 만들어지게 된다.

바이칼 젠 형성 실험.(그림2)
바이칼 젠 형성 실험.(그림2)

결국 바이칼 젠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한 우산 효과라는 결론이다. 태양에서 지구로 입사한 빛은 구름과 대기 중의 여러 분자와 만나 온갖 방향으로 산란한다. 덮개 위 하늘의 여러 방향에서 입사한 빛의 에너지로 호수 위 빙판의 승화가 느리게 일어나, 하루에 약 2mm씩 그 두께가 줄어든다. 덮개돌은 햇볕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여름날 쓰는 양산처럼 작용한다. 덮개돌 바로 아래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의 산란광이 도달하지 못해 얼음이 승화해 줄어드는 양이 적다. 바이칼 젠 돌 아래의 얼음기둥은 위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빙판의 얼음 전체가 승화과정으로 아래로 조금씩 내려앉는 한편, 덮개돌은 바로 아래에 그늘을 드리워 얼음기둥의 승화를 늦춘다.

바이칼 젠을 그린 <그림 1>을 다시 보자. 덮개돌 아래의 빙판이 판판하지 않고 돌 아래 근처가 오목하게 팬 것이 보인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여러 바이칼 젠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는 오목하게 파인 모습에 대한 설명도 들어있다. 여름 날 양산을 들면 그늘이 생겨 조금 서늘해지지만 양산이 뜨거워진다. 양산으로부터 후끈후끈한 복사광이 나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바이칼 젠에서도 양산의 역할을 한 덮개돌에서 적외선 영역의 복사광이 흑체복사로 다시 생성되어 덮개돌 아래 쪽 빙판에 승화를 일으킨다. 바이칼 젠의 사진을 찾아보면 이렇게 빙판이 오목하게 파인 부분이 덮개돌 모습을 닮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의 승화를 일으킨 복사광의 원천이 하늘이 아니라 덮개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덮개돌을 양산 삼아 하늘을 가린 얼음기둥이 바이칼 젠이라면, 햇볕으로 뜨거워진 양산의 복사광이 발아래 얼음을 살짝 녹인 셈이다. 오늘 소개한 논문의 결과를 요약해보자. 바이칼 젠의 얼음기둥은 덮개돌이 드리운 그늘에서 승화가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형성된다. 바이칼 젠은 양산을 받친 얼음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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