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도 사용자도 불만… ‘임금피크제 무효’ 후폭풍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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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도 사용자도 불만… ‘임금피크제 무효’ 후폭풍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2.05.2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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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유효 여지 남겨” vs 사 “고용불안 야기”… ‘근로시간 유연화’ 앞둔 고용부 침묵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올해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을 서로 응원하는 팀에 데려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토트넘홋스퍼 공식 SNS
영국 프리미어리그 올해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을 서로 응원하는 팀에 데려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토트넘홋스퍼 공식 SNS

“37세이기 때문에 에이징 커브도 생각해야 한다. 손흥민이 ‘7번’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을 엿새 앞둔 지난 1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개리 네빌이 스포츠 채널에서 강조한 말입니다. 운동선수가 나이가 들어 기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에이징 커브’(aging curve)에 다다른 선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입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해 ‘먹튀의 분노’를 안겨준 손흥민의 우상이 이제 천덕꾸러기가 된 것입니다.

대법원이 단순히 나이만을 이유로 급여를 깎는 임금피크가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스웰DB
대법원이 단순히 나이만을 이유로 급여를 깎는 임금피크가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스웰DB

대법원이 단순히 나이만을 이유로 급여를 깎는 임금피크가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입니다. ‘임금피크’란 일정 나이(피크 연령)를 넘긴 장기근속 직원의 임금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는 제도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2000년대 들어 금융권에서 알게 모르게 시작했다는 임금피크제는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 도입한 것을 시초로 봅니다.

27일 법조 및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A씨의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전날 확정했습니다. ‘임금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나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다만, 대법원은 임금피크제의 합리성 판단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보상 여부 ▲절감된 인건비가 도입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모든 임금피크제가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연령 차별’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연령만을 이유로 급여를 깎는 임금피크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에 노사 모두 불만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현대자동차 노사의 임단협 협상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단순히 연령만을 이유로 급여를 깎는 임금피크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에 노사 모두 불만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현대자동차 노사의 임단협 협상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이번 대법 판결에 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환영한다면서도 “임금피크제 자체를 무효로 선언하지 않고 유효가 될 여지를 남겨뒀다”라고 밝혀 무효화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환영한다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에서 청년 일자리가 느는 효과는 미미했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만 삭감됐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임금피크제의 본질과 법의 취지 및 산업계에 미칠 영향 등을 도외시한 판결”이라면서 “향후 고령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청년 구직자의 일자리 기회 감소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이 아닌 연령 상생을 위한 제도”라고 예찬론을 펼쳤습니다.

이처럼 노사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공식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 유연화’ 등 국정과제 이행을 앞두고 노동계를 자극할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논평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촉구한 이유입니다.

2020년 3738만명이던 전국 생산가능 인구(15~64세)는 해마다 줄어 2050년에는 2419만명으로 예상된다. /자료=통계청
2020년 3738만명이던 전국 생산가능 인구(15~64세)는 해마다 줄어 2050년에는 2419만명으로 예상된다. /자료=통계청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3738만명이던 전국 생산가능 인구(15~64세)는 해마다 줄어 2050년에는 2419만명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고령인구는 계속 늘어 부양 부담도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먹여 살리는 유소년·고령인구를 뜻하는 총부양비는 2020년 전국 평균 38.7명에서 30년 뒤에는 95.8명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정책과학대학 교수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펴낸 <재정포럼> 5월호에서 “인구절벽의 본격화가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동력 부족은 1·2차 베이비부머 대부분이 정년퇴직하는 2030년대 전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며 “정년연장과 그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이 지금 시작돼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교수는 아울러 근본적으로는 출산율을 회복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 프레임에 대해 철저히 평가하고 정책 방향을 전면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일관성 있게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호날두의 에이징 커브를 손흥민으로 되살릴 ‘우상향 출산율’ 정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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