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한류 스타 ‘테라와 루나 비극’의 진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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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한류 스타 ‘테라와 루나 비극’의 진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5.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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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요즘 외신에서 떠들썩한 테라(Terra)와 루나(Luna). 대부분 사람은 평소 이 이름을 들어 보기 쉽지 않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테라는 대지의 여신인 지구이며, 루나는 달의 여신인데 우리나라 개발자가 2019년 창조한 가상화폐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테라와 루나가 세계 가상화폐 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가상화폐는 지난해 시가총액이 2조달러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논란이 많았던 법적 정당성까지 확보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주 가상화폐 시장에서 벌어진 한 사건으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과 미국 의회까지 가상화폐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감독 강화를 서두르는 움직임이다. 과연 가상화폐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테라와 루나는 우리나라 개발자 권도형(31세)이 대표로 있는 테라폼랩스가 개발한 스테이블 코인 가상화폐다. 불과 일주일 전인 10일 이전만 하더라도 테라의 시가총액은 180억달러, 우리 돈으로 23조원에 달했다. 우리나라 외국어고등학교 출신으로 스탠퍼드대학을 나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을 거친 청년 공학도는 국내에서 티몬 창업자와 의기투합하며 새로운 개념의 스테이블 코인을 개발하며 세계 가상화폐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그리고 최근 사고 발생 이전까지 세계 2위의 가상화폐로 테라와 루나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 연예인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K팝의 BTS에 비해 손색없는 가상화폐 한류스타가 세계적 두뇌들의 격전장에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 테라와 루나의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며 지난 13일 테라의 시가총액이 16억달러로 전 고점 대비 88%나 줄어들었다. 또 테라의 짝인 루나는 지난 주말 가치가 0에 가깝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이 연일 주요 사건으로 다루며 테라와 루나가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테라와 루나의 충격은 가상화폐 시장 전체로 확산했다. 가상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지난해 11월 2조달러에서 이번 달 13일 1조달러까지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테라와 루나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효과’(wag the dog)의 파문은 생각보다 크고 강한 파괴에너지를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이유는 테라와 루나가 가진 설계특성과 이로부터 파생하는 신뢰감 붕괴, 그리고 가상화폐 생태계와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한 세계 금융시장의 위기 등 부정적 이슈가 한꺼번에 몰리는 데 있다.

테라와 루나의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을 이해하려면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가상화폐의 종류에는 먼저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이 가치 보장 장치 없이 이용자와 투자자의 신뢰로만 거래하므로 가격이 불안정하며 급변동하는 순수한 가상화폐가 있다. 그리고 순수 가상화폐의 불안한 가치를 안정화하는 목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한 가상화폐, 스테이블 코인이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 국채 등 안전자산에 연동하는 테더(Tether), USD 코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주로 1코인 가격을 1달러로 유지(peg)하며 블록체인을 이용한 상거래에 안정적 교환 수단을 제공한다. 즉 스테이블 코인은 가상화폐 시장의 기축 통화기능을 목표로 하며 이러한 면에서 가상화폐 금융으로 정의 가능하다. 소셜커머스 앱 티몬에서 영감을 받아 테라와 루나도 기존 현실 상거래에서 중간 거래 수수료를 제거하고 거래 속도를 높이는 디파이(defi) 기능에 초점을 두고 개발된 스테이블 코인이다. 다만 코인 가격을 1달러 가치로 연동하는 방법이 기존의 스테이블 코인과 다른 금융공학적 알고리듬을 도입한 것이 혁신적이다.

루나(위)와 테라 시세. /자료=인베스팅닷컴
루나(위)와 테라 시세. /자료=인베스팅닷컴

서두부터 왜 테라와 루나가 같이 계속 등장하는지 독자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이제 그 궁금증을 해결할 시점이다. 테더와 USD 코인이 1971년 미국 달러가 포기한 금본위제처럼 코인의 가치를 달러나 금융자산의 보유를 통해 확보했다면, 권도형은 ‘차익거래’(arbitrage)라는 독특한 방식의 알고리듬을 가상화폐 가치 유지 시스템 설계에 도입했다. 알고리듬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논리다. 테라와 루나의 작동 원리인 차익거래는 경제학에서 시장 가격이 균형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개념이자 원칙이며, 다수의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 가격을 찾는 과정에서 시장에는 하나의 균형 가격이 존재한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이 그 배경이다. 테라가 1달러보다 시장 가격이 낮아지는 상황을 가정하자. 테라를 루나와 1대 1로 교환 비율이 정해진 상황에서 테라를 루나와 교환하면 싼 테라를 비싼 루나로 교환하므로 교환자에게 차익이 발생한다. 이때 교환조건은 싼 테라를 ‘제거’(burn)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테라의 수량이 줄어들게 되므로 화폐수량설에 의해 테라의 가격은 다시 1달러로 상승한다. 반대로 테라가 1달러보다 높으면 상대적으로 루나의 가치가 하락한 것이므로 루나를 테라로 바꾸면 교환자에게 차익이 발생한다. 역시 이때 교환조건은 싼 루나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법칙을 가상화폐의 가치안정 알고리듬에 권도형은 접목한 것이다. 테라와 루나는 지구와 달처럼 만유인력의 힘으로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상호 존재의 근거가 된다. 권도형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시스템을 가상화폐로 구현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사기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제 왜 가상화폐의 이름을 테라와 루나로 명명했는지 이해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권도형은 시장경제의 균형 이론에 관해 상당한 연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권도형은 동태적 시장 균형 이론에서 항상 시장 가격이 균형점으로 수렴하지 않고 발산하는 예도 있다는 것을 놓쳤다. 지난 10일 이후 테라가 1달러 이하로 하락한 후 테라 이용자는 테라 가격이 1달러로 회복할 것이라는 차익거래에 대한 신뢰가 붕괴하며 테라의 대량 매도가 발생했다. 루나도 같이 폭락했다. 테라 알고리듬 붕괴의 방아쇠는 역설적으로 테라 가격 안정을 위한 ‘고율(20%)의 이자’ 제공이 그 원인이었다. 고이자율을 추구한 가상화폐 투자자가 이달 초 140억달러를 테라 예금 시스템 ‘앵커’(anchor)에 대량 공급했고, 이로 인해 테라 가격이 1달러 이하로 내린 뒤 테라 가격에 대한 투자자의 불안감이 증폭했다. 테라와 루나의 차익거래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테라 대량 매도가 발생하며 가격은 더 하락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테라-루나 시스템의 가격 안정 장치로 30억달러의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화폐를 준비했으나, 권도형이 이를 내다팔자 다른 가상화폐 가격도 폭락했다. 결국 특별 조치에도 테라 가격은 안정되지 않았다.

스테이블 코인은 비트코인 등 순수 가상화폐 투자자가 거래비용을 안정화하기 위해 사용한다. 순수한 가상화폐의 높은 변동성을 이용해서 유리한 매매 기회를 잡은 뒤 거래 과정의 위험을 스테이블 코인으로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테라와 루나에서 발생한 불신은 가뜩이나 변동성이 극심한 가상화폐 시장 전체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가격 하락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피해자들의 원성도 커졌다. 또한 근본적으로 가상화폐 시스템에 대한 감시 감독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해지며 가상화폐의 거래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개인투자가의 전유물이던 가상화폐 시장은 지난해부터 테슬라,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 경제 악화요인에도 민감해지는 등 가상화폐의 성격도 변했다. 기관투자가를 매개로 가상화폐의 변동성이 기존 전통적 금융시장에 영향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자산으로 설계한 테라와 루나의 침몰은 금융시장과 접촉점이 늘어난 가상화폐에 대한 불신을 증폭했다. 또한 러시아 침공의 지정학적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 주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그리고 경기 침체 전망으로 올해 초 이후 위험 자산 가격이 급락을 이어가는 시점이므로, 테라와 루나의 붕괴 파문은 공포를 공통분모로 전체 금융시장에 비논리적인 확산도 추측할 수 있다. 현재 짧은 시간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성공과 실패를 겪은 권도형 대표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루나와 테라의 거래 알고리듬이 폰지 사기의 일종이라는 비판도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권도형 대표는 지난달 출생한 딸 이름을 루나로 지었다며 트윗했다고 한다. 권 대표의 테라-루나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실패한 실험이지만 세계 가상화폐 금융 무대에서 기억에 남는 우리나라 젊은이의 첫 도전이었기에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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