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억 횡령’ 우리은행, 이원덕 행장이 지금 할 일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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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억 횡령’ 우리은행, 이원덕 행장이 지금 할 일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5.1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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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금융회사의 탐욕으로 세계 경제를 뒤흔든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금융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금융시장의 기업 성장 전망에 대한 평가인 시가총액에서 웰스파고(Wells Fargo)가 2012년 무렵 다른 은행을 제치고 선두로 나섰다. 웰스파고는 국내 금융 혁신 연수 어디에서나 단골 메뉴로 등장할 만큼, 한국 금융산업이 배우고 싶은 선진 금융회사 모델 1순위였다. 부단한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워온 제이피모건 체이스(JP Morgan Chase)는 자산규모에서는 웰스파고를 1조 달러 이상 앞섰으나 시가총액에는 뒤졌다. 웰스파고의 기업가치 프리미엄을 투자자는 높게 평가했고, 성장세도 가팔랐다.

그러나 잘나가던 웰스파고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경영실적을 높이고자 행해진 ‘도덕적 해이’였다. 2016년 9월 감독 당국은 고객 동의 없이 계좌를 개설하고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웰스파고의 부정 영업활동을 적발했고, 그로 인해 웰스파고의 은행 신뢰와 평판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결국 2022년 4월 말 현재 웰스파고의 시가총액은 1660억 달러로 반 토막 났고 벌금, 기소유예 합의금 등으로 70억 달러를 물었다. 웰스파고의 도덕성 헛발질의 피해는 막대했다. 아무리 잘나가고 대마(大馬) 취급을 받더라도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금융회사는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우는 사례다.

최근 우리금융이 또 시끄럽다. 2019년 출범한 우리금융지주 순이익 비중의 92%를 차지하는 우리은행에 614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횡령 사건이 발생해서다. 금액도 크지만, 문제는 사건의 양태(樣態)가 심각하게 나쁘다는 점이다. 은행의 한 직원이 국제간 기업 거래 자금을 보관한 특별(에스크로) 계정에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3차례에 걸쳐 불법으로 자금을 인출했으나 그 사실은 10년이 지난 2022년 4월에야 확인됐다는 것이 기막힌 사건의 전모다.

언론은 초기에는 횡령 사건이 형제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극적 작품성에 집중하다가 11회 감사에도 횡령을 발견하지 못한 금융감독원, 매년 회계감사를 실시한 회계법인의 책임에 이어 금융위원회를 분리해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까지 끌어왔다. 그러나 우리금융의 이번 사고는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우리금융의 내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경고임을 금융당국이 알았으면 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금융회사는 자금 입출금을 실물, 전표, 전산원장의 세 가지 측면에서 교차 점검한다. 이것을 시재(時在) 점검이라 하는데, 매일 마감 시한을 정해놓고 시재를 점검하고 기록하도록 은행 시스템은 구축돼있다. 금융회사 직원은 매일 마감 시한에 시재가 단 1원이 차이가 나더러도 그 원인을 찾고 해소하는 것을 기본자세로 알고 지켜야 한다. 이 시재 마감 행위는 금융인의 책무이면서 고객의 재산을 지킨다는 금융인만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은행 금고의 자금은 한 푼 예외 없이 은행직원 그 누구의 사적 자산이 아닌 국민 재산에서 유래한 공적인 자산이다. 국가는 은행원이 철저하게 재산을 지킨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예금으로부터 대출을 반복하는 신용창조의 비즈니스인 은행업을 영위할 권한을 법으로 부여하고 보호한다. 즉 권한의 반대급부로 은행이 지켜야 할 신뢰는 바로 시재 관리에서 출발한다. 필자도 과거 지점 근무할 때 새벽까지 남녀 전 직원이 몇백 원 틀린 시재를 찾고, 맞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에 일어난 우리은행 횡령 사건이 국제 자금 거래에서 발생했지만, 시재를 맞춘다는 금융회사의 자금관리 원칙은 기본적으로 같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인이 보기에 이번 우리은행의 금융사고는 단순한 횡령의 범위를 넘어선다.

우리은행은 그 원시(元始)가 한국 금융의 대표였던 한일은행이다. 도대체 과거 한국 대표 뱅커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시재 마감에 대한 책임감이 붕괴했을까? 시재 마감의 의무감이 사라진 은행에 고객과 금융당국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횡령에 따른 시재 불일치를 10년 동안이나 은행 조직에서 아무도 몰랐으며 어쩌다 우연히 발생한 것도 아니고 3차례나 불법 인출이 가능했던 점은 아무래도 불가사의할 따름이다. 지난 10년 동안 시재를 맞추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고민한 우리은행 직원은 왜 없었을까?

한편 2022년 주주총회에 보고한 감사보고서의 충당부채 항목 주석에는 이란 제재로 이란과의 원화 결제 업무를 2019년 9월 23일 중단했고 2020년 7월 13일 재개했으며 미국 정부의 제재 위반 조사를 받고 있음을 기재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이러한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는 관련 대응 체크 리스트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점검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도 우리은행은 이란 관련 자금 횡령 사실을 일찍 발견하지 못했고 2022년 4월에서야 알았다. 우리은행의 횡령 사건은 은행의 시재 점검이라는 신뢰 보장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체계적으로 붕괴했음을 의미하며, 만일 거래상대방 리스크에 관심을 가진 우리은행 이용자가 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한다면 상당한 동요도 우려된다.

우리금융이 홈페이지에 공시한 핵심 가치에서 첫 두 가지 항목은 ‘고객’과 ‘신뢰’다. 그러나 이번 횡령 사건을 비롯한 최근까지 수년 동안 우리금융과 관련하여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핵심 가치에 대한 우리은행 이용자의 믿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다시 한번 2022년 감사보고서의 충당부채 항목을 들여다보자. 여기에서 부당한 영업활동 결과로 우리은행이 고객에게 피해를 주고 분쟁이 진행 중인 사모펀드 리스트를 확인 할 수 있다. 리스트에는 2019년 독일과 영국의 금리 DLF로부터 라임자산운용 펀드, 플랫폼 아시아 펀드, 헤리티지 DLS, 젠투 파트너스 DLS 등 고객을 울린 불완전 판매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와 관련한 미래의 손실 보상과 과태료로 지급 예상하는 충당 부채액도 라임자산운용 펀드 1221억원을 포함, 1800억원이 넘는다. 결국 금융회사 경영진의 과도한 실적 추구와 잘못된 경영은 고객과 은행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다.

한편 2019년 불거진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사태의 시작이었던 독일과 영국 국채 금리 DLF는 우리은행이 국내 판매액의 거의 절반인 약 4000억원을 팔았다. 판매 개시 시점인 2017년부터 문제가 발생한 2019년까지는 현재의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재임하던 시절과 꼭 겹친다. 손태승 회장은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사한 정통 우리은행원 출신이며 근무이력의 큰 비중을 국제업무 경력이 차지한다. 2017년 11월 우리은행장 취임 직전 업무도 글로벌부문 부문장이었으며 손 회장의 글로벌 경험과 확신이 판매 당시에는 생소했던 해외금리 DLF의 적극적인 은행 판매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DLF 등 수수료 수익 증대목표를 직원에게 상향 제시하며 금감원이 총체적 부실로 규정한 DLF 판매 규모를 키웠다. 그 결과 고령층 부실 판매 등으로 우리은행의 고객 피해가 커졌다.

2019년 은행장을 겸임한 회장으로 선임된 손태승 회장은 DLF 손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2020년 적극적으로 피해보상 등 사태 수습에 나서기도 했으나 2021년 회장 연임을 앞두고는 부실 판매책임 회피에 한층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부실 판매와 관련하여 회장 연임이 불가능한 수준의 문책경고 징계를 확정하자 손 회장은 징계 불복 행정 소송에서 승소하며 책임 회피에 성공했다. 이때 내려진 판결의 요지는 고객 피해를 초래한 부적절한 감독 책임은 인정하지만, 법의 불비로 금융회사 CEO의 중징계는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막대한 고객 피해가 발생한 은행 수장이었지만 그 책임은 법률 기술에 기대어 피해간 것이다. 손태승 회장의 DLF 관련 항소심은 아직 진행 중이다.

2021년 라임자산운용 펀드 부실 판매에 대해서도 금융감독원은 손태승 회장에게 다시 문책경고를 통보했지만, DLF 1심 판결 영향으로 금융위의 최종 결정은 유보 상태다. 결국 DLF 징계 관련 승소 판결로 현재까지 손태승 회장 체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은행의 핵심 가치인 ‘고객’과 ‘신뢰’를 떠올리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외부에서 영입한 사람도 아니고 평생을 우리은행 고객에게 기대어 성장해온 CEO가 자기 은행 고객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원성을 산 감독 책임을 어떻게 해서든지 외면하고 자리를 보존하는 모습은 30년 금융인인 필자도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물론 이러한 행태는 같은 건으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타 금융지주도 예외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상의 횡령 사건과 사모펀드 손실 사태 및 책임 회피 과정에서 미뤄보건대 우리금융은 경영진부터 직원까지 전반적으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에 균열이 없는지 점검을 해야 할 것이다. 입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고사성어 구밀복검(口蜜腹劍)이 떠오른다. 겉으로는 호의를 보이지만 은근히 해칠 생각을 품고 있다는 뜻인데 우리은행의 일련의 사태를 보고 은행 고객이 느낄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신임 이원덕 행장은 미국 수위 은행 제이피모건 체이스처럼 ‘슈퍼 앱’ 전략 등 디지털 플랫폼을 강화해 서비스 혁신을 추진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물론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고객과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원칙을 통해 믿음을 만들어 간다’라는 우리은행 핵심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원덕 행장의 심사숙고가 시급하다. 부디 우리금융이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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